東京의 역사
도쿄의 역사는 4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명칭은 에도(江戶)였으나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곳에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를 세운 후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에도는 일본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며 18세기 중엽에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 사이 황제는 교토에 살았고 국가의 공식 수도였다. 에도시대는 260년 가까이 이어졌고, 1868년 메이지유신(메이지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덕천막부)가 끝나면서 제국 지배가 회복되었다. 황제가 에도로 이주하면서 에도가 도쿄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도쿄는 일본의 수도가 됐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일본은 서양 문명의 동화에 열중하였다. 봉건영주의 집터에는 돌과 벽돌 건물이 세워졌고, 주요 도로는 둥근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1869년 일본에서는 도쿄요코하마 간 최초의 통신노선이 개통됐고 1872년 신바시요코하마 간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남성적인 헤어스타일에 전통적으로 업스타일, 리본 캡, 터틀넥, 볼륨감 있는 스커트 자락이 트렌디한 제품입니다. 1882년 일본 최초의 동물공원이 우에노에 개원했다. 1885년 의원내각제를 시행해 이토 히로부미가 된 일본의 초대 총리가 된다. 1889년 일본제국헌법이 공포되어 근대국가의 정치제도가 확립되었다.
태수시대(19121926년)에는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면서 소비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시민이 많아졌다. 교육수준이 향상되면서 계속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도 늘었다. 극장 오페라 등 공연예술이 활발하게 발전한다.
1923년 9월 도쿄는 도쿄대지진으로 궤멸됐다.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도심이 불탔다. 사망 또는 실종자가 14만 명이 넘고 가옥 30만 채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 후 도시 재개발 계획이 세워졌지만 국가 예산보다 비용이 더 들 것으로 예상돼 일부만 달성했다.
간토대지진 직후 쇼와시대(1926~1989)가 흐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본 최초의 지하철 노선은 1927년 아사쿠사(아사쿠사)와 우에노(우에노) 사이에 개통됐고, 1928년 일반 남성 선거가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16대 국회 중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1931년 도쿄공항이 하네다공항에 개항하고 1941년 도쿄항이 정식 개항했다. 도쿄 인구는 1935년 636만 명으로 늘어 뉴욕과 런던에 못지않다.
그러나 1941년 일어난 태평양전쟁은 도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시작전통제권 효율화를 위해 도쿄부와 도쿄부의 이중 행정체제는 폐지됐고 군과 시는 1943년 도쿄도로 통합됐다. 수도 관리 체제가 이처럼 구축되고 주지사도 임명되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도쿄는 102회의 폭격을 맞았다. 가장 심각한 공습은 1945년 3월 10일로 이번 공습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1945년 9월 2일 끝난 전쟁 당시 일본 정부는 군사대표와 '항복서'에 서명했다. 도쿄 대부분의 지역이 폭격으로 황폐화됐고 1945년 10월 현재 인구는 349만 명으로 1940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1947년 5월 일본의 신헌법과 지방자치법이 발효되면서 야스이 세이치로(安井誠一郞)는 신체제에서 민선을 통해 동경 초대 총독에 당선되었다. 그해 8월 현재 23개의 특혜 시스템이 도쿄 메트로폴리탄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는 전국이 서서히 회복되는 시기였다.TV방송은 1953년 시작됐고 일본은 1956년 유엔에 가입했다. 특히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특구매 붐이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일본은 1960년대에 고도 경제성장기에 진입했다. 기술혁신과 신산업·기술의 도입으로 합성섬유와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도쿄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1962년 도쿄 인구 10만 명 돌파 00만 대관문.1964년 도쿄 올림픽과 신칸센(bullet train) 운행이 시작되고 메트로폴리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도쿄가 현재 번영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이 높은 수준의 소음뿐만 아니라 공기와 강의 오염과 같은 환경 문제들에 시달리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의 부담이 명백해졌다. 1973년의 석유 위기는 수년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중단시켰다.
1980년대에, 도쿄는 점점 더 세계적인 경제 활동과 정보 사회의 출현으로 경제 성장에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도쿄는 고도의 공공 안전은 물론 첨단 기술, 정보, 문화, 패션 등의 볼거리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대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1986년부터 땅과 주가가 상승했는데, 이것은 "거품 경제"로 알려진 현상이다.
일본은 거품경제 아래서 엄청난 성장을 누렸지만 1990년대 초반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가 수도권 재정에서 중대한 국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도쿄는 두 번의 연속적인 재정 재건 프로그램을 통해 이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인구도 도쿄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12년 만에 이주자가 초과 이주했다. 2001년 도쿄 인구는 1200만 명에 달했고, 2010년에는 1300만 명을 넘어섰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도호쿠 지방을 강타했고, 도쿄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이번 재난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위기 관리 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9월 도쿄는 2020년 제2회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도쿄도는 2020년 올림픽을 역대 최고로 만들고 미래를 위한 귀중한 유산을 남기기 위해 인프라 업그레이드, 환경 대책, 문화 진흥 등 유무형의 이니셔티브를 모두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쿄의 인구는 2020년에 정점에 도달하면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도시는 인구 회색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도 감안, 경제적 풍요와 삶의 질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 누구나 충분히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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